이혼 절차를 마치고 돌아온 곳은 친정이었다.
20대에는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었던 집이었는데...
독립하고 싶었고,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.
그런데 다시 돌아온 내 친정집은 놀랍도록 편안했다.
오히려 쉼표 같은 공간이 되어 나를 맞아주었다.
퇴근 후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처음인듯했다.
어릴 땐 당연한 일상이었지만,
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온
내 20대에는 없었던 시간이라 그런지
‘너,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으니 숨 좀 고르고,
바쁘게 달려온 시간들도 정리하고,
쉬어가라는거구나’ 싶었다.
내 방은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.
내가 쓰던 책상, 참고서, 공부 노트, 심지어 성적표까지…
아빠는 “네 추억들이니까 네가 와서 직접 정리해”하고
그 모든 걸 10년 넘게 그대로 두고 계셨다.
그 순간, 내 방은 마치 살아 있는 박물관 같았다.
나는 천천히 그 박물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.
사실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다.
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후련했다.
하나하나 꺼내 보며 ‘아, 이런 것도 있었네’ 하고
추억에 잠기기도 했지만, 망설임 없이 버렸다.
과거는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두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. 쾌쾌묵은 것들을 정리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.
생각해보면, 같이 살던 집에서 나올 때도
비슷한 경험을 했다.
친정으로 돌아올때 짐을 챙기려고 보니
정말 필요한 건 몇 가지뿐이었고,
내가 붙잡고 있던 건 사실 필요해서가 아니라
그냥 못 버리고 있던 것들이었다.
친정에 와서도 그 흐름은 이어졌는데,
결국 내 방에 남은 건 침대 하나뿐이었다.
아빠도, 나도..한 마음 한 뜻으로
‘이제 과거보단 현재,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들에
집중하리라…’
그렇게 집을 정리하면서
내 마음도 정리되는 기분이었다.
그리고 아빠와 함께 보내는 저녁,
TV를 보거나 같이 밥먹는 소소한 시간이
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.
돌아보니 나는 내 20대를 온전히 나로 살지 못했다.
대학, 대학원, 취업, 결혼, 임신, 육아…
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…
그 모든 인생의 과업을 스스로 짊어지고 달리느라
정작 내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다.
이제는 조금 늦게 찾아온,
쉼표 같은 이 시간이 있어서 감사했다.
친정으로 돌아온 시간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,
다시 나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.
방 안 가득 쌓여 있던 과거를 정리하면서 알았다.
내가 놓지 못했던 건 ‘물건’이 아니라,
사실은 ‘마음’이었다는 걸.
하나씩 내려놓을수록 후련해졌고,
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
새로운 미래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.
그렇지만 마음이라는 게…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.
분명 괜찮다고 믿었는데…
문득 찾아오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쳐
나를 괴롭게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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