생각이 많은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나요?/나의 이야기도 글이 될 수 있을까?

[4화] ‘기타‘라는 이름으로

쭈플레이스 2025. 8. 16. 00:28

이혼하고 나서
내가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두 가지였다.
하나는 차, 또 하나는 집.

같이 타던 차는 두고 나왔으니 당장 발이 묶였고,
친정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
언젠가 아이와 함께 살 집은 꼭 필요했다.
아이를 지금은 아빠에게 맡기고 나왔지만,
사춘기가 오거나 아이가 엄마와 살고 싶다고
말하는 날이 오면,
그때는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.

결혼 생활 동안 우리는 돈을 따로 관리했다.
전남편은 늘 부동산 폭락을 외쳤고,
집 사는 데엔 관심이 없었다.
제일 문제인건 집뿐만아니라 우리가족 미래에
대한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려 하지 않았다.
난 그 점이 늘 불만 아닌 불만이었던 것 같다.

그래서일까…?
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,
그 자유가 참 좋았다.

그런데 막상 내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니
재테크의 ‘재’자도 모르는건 그렇다쳐도
내가 얼마 벌고, 얼마 쓰는지 조차도
모르고 살았다니..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.

차를 계약하고, 집에 관심을 갖는 내가
뭔가 친구들이랑 반대로 가는 것 같았다.
다들 20대때 했던 고민과 과정을
난 30대되서야 하는 것 같았고,
반대로 친구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임신,
또는 이제 막 낳아서 전쟁같이 키우고있는데
난 이미 초딩맘이다…!
(에이, 뭐 이 나이엔 이거하고,
저 나이엔 저거해야하고가 어딨어?
그냥 내 페이스대로 사는거지!
괜찮아, 지금부터라도 하자)
마음은 참 하루에도 몇번씩 롤러코스터를 탔다.

그래서 일단 시작했다.
부동산 강의도 듣고, 스터디도 하고, 임장도 다녀봤다.
그리고 휴가 때 하루를 잡아 아파트를 보러 갔는데,
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다.

‘대출은 어떻게 받는거야?’
뭐하나 알지도 못하는 내가, 너무 부끄러웠다.
다행히도 일단 재직증명서,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…
뭐 요정도 챙겨서 은행가보라고 조언을 받았다.

대출 상담을 받으러 은행에 갔을 때였다.
신청서에 ‘혼인 여부’를 표시하는 칸이 있었다.
미혼, 기혼. 두 가지뿐이었다.

순간 멈칫했다.
나는 이제 기혼은 아니고…
그렇다고 미혼이라고 체크하자니, 뭔가 아니었다.
‘미혼’이라는 말은 결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
싱글의 느낌이 강하지 않나…?

결국 나는 직원 앞에서 처음으로 말했다.
“저… 이혼했어요.”

친한 친구나 아는 언니 말고,
낯선 사람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.
하나도 부끄럽지 않고,
이혼한게 뭐 죄지은 것도 아닌데
왠지 말이 목에 걸려 잘 안 나왔다.

직원은 “아…“하고 넘어가길래
나도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이지,
또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해서는,
”그럼 전 뭔가요?“ 되물었다.

직원은 나에게 ”기타…“ 라고 했다.

‘기타’라니.
그 말을 듣는 순간, 웃음이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.
기타?????

생각해보면 미혼도, 기혼도 아닌 사람들이
세상에 얼마나 많은데…!
왜 아직도 세상은 둘로만 나누려 할까.
돌싱도 꽤 많을 텐데,
선택지에 그들이 체크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니…
이상했다.

나는 결국 ‘기타’가 되어버렸다.
웃프면서도 씁쓸한 순간이었다.

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,
그건 제도가 정한 분류일 뿐
나를 정의하는 말은 아니었다.
내가 기타라서 웃픈 게 아니라,
기타라는 칸 안에서도
나는 내 삶을 다시 세워나갈 것이라…다짐했다.

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리했다.
“그래, 난 기타야.
그렇지만 동시에, 나는 나다.”


이혼 이후의 삶은
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다.
때로는 허무했고, 때로는 웃겼고,
또 때로는 말할 수 없이 고단했다.

하지만 분명해진 게 하나 있다.
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로만,
누군가의 엄마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.

나는 나로서 살아가야 하고,
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.

이제는 ‘기타’라는 칸에 갇히지 않는다.
나는 나답게 웃고, 울고,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.

그리고 언젠가 내 하루를 돌아봤을 때
“그래, 그때 참 잘 버텼다. 잘 살아냈다.”
그렇게 스스로를 안아줄 날이 올 거라 믿는다.